역시나 큰 일을 앞두고 난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 고요해지면 느껴지는 두려움과 망상을 대면하기 싫어서인지 사람을 만나거나 티비를 틀거나 되도 않는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아, 차분히 정리하고 싶다. 글을 쓰고 싶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다.. 하는 등의 마음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 이제 정말 준비를 해야 할 때이다. 피할 수도 미룰 수도 없는 출발의 그 날이 이 틀 앞으로 다가왔다. 왜 나는 이 여행을 이렇게 무겁게 생각하고 있는가. 사실 잘 모르겠다. 아니 모르는 것보다는 그것을 일일이 설명하기가 힘겹다. 그 생각을 할 수록 이 여행의 무게가 더해지는 것 같다. 에라이, 그래도 우리 유 여사님은 언젠가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두려운 것들 떨리는 것들, 무서운 것들일 수록 실체를 볼려고 노력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1. 난 왜 이 여행을 가려고 했는가.
1) 만나야 하고 목격해야 하는.
- 자사의 경제적 이윤만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 취직하는 것은 예저녁부터 내 마음 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 대학에서 다양한 운동을 접하면서, 그리고 나의 운동을 찾아나가면서 졸업 이후에도 이렇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 그러면서 알게된 묵묵히, 꾸준히 그들의 신념과 비전을 가지고 활동하는 단체,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은 활자로 만났다.
- 한편으론 부러웠고 한편으론 질투났고 한편으로 그곳을 나의 비빌언덕으로 만들어 볼까하는 생각도 했다.
- 그러기 위해선 만나야했고 그 공간과 현장을 목격해야 했다. 활자 안에서처럼 그들은 행복-아니 굳이 행복이 아니더라도 복작복작하게 열심히 활동하면서..- 할까. 그들이 나에게 길을 보여줄 것만 같았다.
2) 서울 이외의 것을 경험해야 했다.
- 대학생의 신분으로, 서울에서, 부모의 집에서 다른 방식의 삶을 고민하고 그것을 실천해나가는 것은 참으로 많은 모순에 부딪히는 일이다.
- 학생은 무언가 용서받는 존재다. 뭔가 유예의 기간인 듯 하다. 그것이 짧은 관심이어도, 프로젝트여도, 중간에 엎어져도 그것은 젊은 학생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 수 있는 것이 된다. 나 스스로도 길게, 그리고 일상의 삶에서 무언가를 꾸준히 바라보고 다른 이들과 소통하기엔 대학생 딱지를 유지하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들이 너무 많다. 또한 그런 것들이 너무 무겁다. 집적거려보고 싶은 것들이 매우 많다. (왜 대학생 딱지를 유지하려고 하는가, 그래 이것은 성찰해봐야 할 문제이다.)
- 서울은 소비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친구와 이야기를 하려해도, 자본주의 경제 세미나를 하려해도, 비정규직 세미나를 해도, 생태 세미나를 하려해도 우린 공간, 음료, 음식을 소비해야 한다. 아. 이것은 매우 비극적이다. 정말 내가 지향하는 삶과 나의 서울에서의 삶을 일치시키려면 안 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나도 몇 가지 수칙을 정해놓았는데 이 수칙들은 서울 한복판에서 사람을 만나며 살다보면 정말정말 어쩔 수 없이 깨지게 되는 순간들이 온다.
- 아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지향하는 삶을 살기위해서는, 일단 내가 먹고 살아야 하는데 그 기반으로서의 경제적 생산과정이 도시에선 매우 의존적으로 일어나고 내가 의존하는 그 체제는 내가 지향하는 삶을 위협하는 것이고 그와 아예 반대되는 것이다 나의 입과 머리가 따로노는 이중생활이 필연적으로 전제 될수 밖에 없다.
- 서울에서 무엇을 계속 하기란 과연 가능한 걸까. 라는 의심이 들 수 밖에 없다.
- 그러나 난 23년 인생 전부를 서울에서 산 인간이다. 서울 이외의 공간이라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인지에 대한 감이 전무하다. 아마 오리엔탈리즘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사고로 서울 이외의 지역을 사고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서울을 떠나보아야 했다. 도시를 떠나보아야 했다. (난 '---야' 하는 게 아니라 '---보아야' 했군)
=> 1)+ 2) = 3) 마을을 만들어가는 공간, 공간을 만들어내는 마을을 보고 싶었다.
2. 그렇담, 이 여행에 앞서서 나를 떨리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걱정하는가.
- 여행지에서 만날 사람들과 단체들의 내공이 너무 셀까봐 그것이 걱정이다. 그래서 내가 기가 죽어 하고 싶은 말도 못하고 주뼛주뼛 거리다 이도저도 아니게 땅바닥을 굴러다닐까봐 그것이 걱정이다. 그들의 내공에 망신당할 것도 걱정이다. 그냥 솔직하게 자연스럽게 관계 맺으면 될거야 라고 머리고 수백번 외쳐보지만 잘 보이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까불다가 상대를 보지 못하고 그 공간을 마주하지 못하고 그 현장의 맥락을 공감하지 못하고 나의 욕망만을 바라보다가 자학하고 돌아올까봐 걱정이다. 그래, 사실은 이게 가장 걱정이다. 그 시공간에서 살아내야지 역할극하다 오면 안되는데...........걱정이다.
- 내 저질 체력이 걱정이다. 내 귀차니즘이 걱정이다. 저질 체력과 귀차니즘은 누가 원인이고 결과인지 알 수 없는, 나에게 있어 닭과 계란의 순서밝히기와 같은 것이다. 내 관절들아, 내 위장아, 내 신경성 스트레스야 제발 날 도와주오. 배낭은 메고 다녀야 되는데.......하하.
- 여행 다녀와서도 여전히 나는 똑같을까봐, 여전히 앞길이 막막할까봐, 여전히 용기없을까봐 걱정이다. 은연중에 난 이 여행이 내 인생의 엄청난 전환기가 되어주길 기대하고 있다. 이 여행이 내 길을 보여주고 나의 두려움을 없애줄 것 이라고..
하지만 길은 한 번에 보여지지 않고 인간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원래 길은 껌껌한 곳을 더듬어 가며 내야하는 것이고 인간은 제 성격의 기본 바탕을 가지고 지지고 볶고 비벼대며 사는 것이다.
(응? 나 너무 안다는 듯이 이야기하나?)
억, 무튼 그래도 어떻게 자꾸 기대하게 되는데... 제길, 여행기들이 너무 그런 것들이 많아서 그래!
이러나 저러나 나는 류지인 것을.....이러나 저러나 나를 궁휼히 여길 자는 나라는 것을......나 있고 여행났지 여행나고 나 났냐라는 생각으로 지내야지...
- 질투할까봐 걱정이다. 서로를 바라보지 못할까봐 걱정이다. 눈치볼까봐 걱정이다. (왜 이렇게 걱정은 술술 써지는가)
3. 그래서 난 지금 어떤 준비를 할 수 있는가.
.................................조용히 때를 기다린다. 몇 가지를 되뇌인다........세다세다 튀어나올 듯할 자아를 좀 누그러뜨리고 시간과 공간에 맡기는 연습을 한다.(과연 이것이 되는가.........).. 이 걱정을 체리에게 말한다. 그 분의 자리를 만들어놓는다......신발끈을 묶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