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활 소감문은 이제 버퍼링 2%정도다. 아 어찌 다 쓸 수 있겠는가. 많이 스펙타클 했던 농활.
나의 위선과 거짓을 아주 그냥 제대로 볼 수 있었고, 사람에게 머뭇거리는 감정, 언저리를 맴도는 부끄러움, 그럼에도 잘 보이고 싶은 마음 그런 찌질함의 총체들도 아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또, 아 조금만 더 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 난.
어려운 농활이었다. 관계맺기도. 중심잡기도. 느끼기도. 생각하기도. 순간순간 마지막을 상상하기도 했다.
확실하고 싶었던 것은 나의 욕심이었다. 아아. 듣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그 이전에 선택을 해야할 상황에 놓여진다. 이것은 이것. 저것은 저것. 이럴 때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우리는 모두가 충분히, 진심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일정한 형태의 '판', '판의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누군가에겐 강요가 되기도 하는 건가? 규율이 되기도 하고? 그 규율을 만들기 위해 전체가 토론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 토론을 제안하는 것부터 '나이 권력'이 충만한 내가 하기에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강요, 억압이 될 수도 있는 거라 매우매우 껄끄러웠다. 그래도 난 말하고 싶은 한 사람을 생각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내, 나의 이 모습이 누군가를 말 못하게 하는 건 아닌가 고민이 된다. 아, 어떤 것도 일정한 답은 없다. 그 순간, 그 공기에서 선택되어야 하고 선택 내려져야 한다.
여성은 살아남기 위해 언제나 (사회적)여성 되기, 인간 되기 중에 한가지를 선택해야 한다. (뭔가 더 딱 느낌이 오게 표현하고 싶은데 못하겠다.) 여성에게는 이 두가지가 대립항이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자연적으로 포기된다. 아마 남성이라면 절대 이런 고민을 하지 않을 테다. 너무나 확연하게 (사회적)남성 = 인간이다 못해 '우월함'으로 기준으로 존재하고 있으니까.
난 그래서 그 순간에 수만번 고민했다. 아 그냥, 그냥 그의 '호의'를 받아들일 것인가 아님 거절할 것인가. 여느 때와 같았으면 그냥 너무나 쉽게 했을 선택이 그와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어려워졌다. 결국 난 그것을 거절했지만, 왠지 모를 미안함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아니, 전혀 내가 미안할 필요가 없는 건데. 아. 그래도 혹시. 아. 하는 마음에 아직도 마음 한켠에 그것이 묵직하게 남아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생태라면. 그 모든 차별과 억압은 어떻게 하는가. 차별과 억압이 있는 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잖아! 하며 그것은 우리가 말하는 '생태'에 들어가지 않는다 할 수 있겠지만. '있는 그대로'를 상상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서 우리는 종종 그냥 지금 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로 받아들인다. 더욱이 그것이 자신이 권력을 획득하고 있는 상황, 배경이라던가, 관심이 없는 내용이라면. 그래서 때때로 그 '있는 그대로'가 너무나 많은 사람을 억압할 수도 있는 거다.
난 그냥 내가 늘 말하던 대로 생태를 의도적으로 숨겨져 왔던 관계의 회복이라 부르겠다. 협소할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내가 동의할 수 있는 생태는 여기까지다.
나머지는 소감문에 담아야지. 쓰는 동안 모기에 엄청 뜯겼다. 슬프다.
근황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