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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나를 멀리서 목격하게 될 때가 있다. 시공간은 그대로인데 나는 그 시공간을 초월한 곳에 있는 것이다. 그럴 때면, 햇빛도 음악도 사람들의 소리도 멀어져 평화로워진다. 아, 그저 이렇게 흘러가고 있구나 하는 느낌. 막다른 곳까지 같구나 하는 순간, 다른 곳으로 이미 흘러가고 있는 나를 본다. 이것이 슬픔의 끝이구나 하는 순간에 이미 '살면서' 울고 있는 나를 본다. 그렇다면 그까짓 것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그 무엇이 나를 무너뜨리게 하랴 하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올라오기도 한다. 내 무슨 대단한 생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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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할 수 있는 것이 성숙의 과정이고 치유의 과정인 걸까. 분리하는 것이 더욱 사랑하는 방법일까.
포기일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분리한 뒤에도 외면하지 않으면 포기가 아니겠지. 주시하고 있다면,
혼자 끝을 보고 돌아서지 않는다면. 흔들림을 명확함으로 억지로 바꿔내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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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함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자신의 꿈을 내보이는 세상이다. 그 꿈이 얼마나 간절한지에 대해 남에게 증명해보이는 세상이다. 어째 그 꿈 너무나 얄팍해보인다. 꿈이란 말이 그렇게 공허한 단어였던가. '꿈'으로 가린채 우리는 무엇을 욕망하고 있을까. 그 꿈을 경쟁시켜, 간절함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그려내는 이들은 무엇을 가리려고 하는걸까. 어떻게서든지 얻어내야만 하는, 쟁취해야 하는, 이루어야 하는 '간절함'만 존재하는 사회. 뻗은 손 위에 닿은 것은 무엇일까. 누구나가 발을 동동굴러야, 발을 동동구르는 데서 행복을 느껴야 살 수 있는 사회. 생각하면 무섭다. 모두가 결핍이며, 결핍이라 느껴야 하며, 그렇기에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 사회, 무언가를 내보여야 하는 사회, 그래야 투명인간이 되지 않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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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그 자체로 생명인 것을.
과연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