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YMCA 활동에 대해서 계속 회의적이었다.
하나하나 자기 길(?)을 찾아 떠나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난 계속 외로웠었고 분명히 내가 하고 싶은 활동은 맞는 것 같은데 근거 없는 책임감과 의무감에 사로잡혀 힘들어 하는 내 모습이 낯설었다. 그러다 총회 사전모임에 참가했다. 될 대로 되라였다. 어차피 난 내가 총회에 가야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스트레스를 받았던 터, 어느 새 태국에 한 번 놀러나 가보자라고 마음먹은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와는 달리 사전 모임에서 만난, 자기 활동에 자부심을 가지고 신나하는 고등학생 친구들이 나에겐 굉장히 신선했다. YMCA 활동을 하면서 처음 본 목적문들도 신선했다. 조직, 목적문 이런 것들과 친하지 않은 나에게 이것이 신선했다는 건 지금 생각해보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래서인지, 사전모임 책자에 나온 마치 논술문제 같은 질문들에 나 나름대로 굉장히 열심히 답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차차, 총회에 흥미가 생겼달까. 다른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Y 활동을 하고 있을까. 무슨 활동을 하고 있을까.
그래도 막상 태국에 떨어지고 보니 내 성격이 어디 가랴. 앞에 썼던 내용들은 막상 새로운 사람이 부글대는 장소에 들어서니, 내 머릿속에서 모두 사라지고 적응해야 한다는 압박감만 남았다. 이렇게 쓰다간 소감문이 내 심경변화 스토리에서 시작해 한 바탕 쓸 것 같다. 이만 넘어가겠다. 제안서에 쓴 총회에서 느낀 아쉬움들은 참가자 다 공유하고 있는 것이니 그 외에 내가 이번 총회를 하루하루 보내며 생각했던 것들을 써보겠다.
.Youth
청년 포럼에서 각 지역 청년들이 자신들이 해왔던, 하고 있는 YMCA 활동에 대해서 나누었다. 우리는 홍콩, 일본, 타이완 참가자들과 함께 했다. 한국 외엔 다들 캠프, 교류, 다른 나라에 가서 하는 워크캠프, 혹은 봉사활동이었다. 물론, 그 활동이 필요 없다거나, 수준이 낮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뭔가 식상했다. 각 대학 Y, 지역 청년 Y가 스스로의 일로서 한다는 느낌이 부족했다. 원래 있는 활동을 단순히 청년, 대학Y라는 이름하에 지속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 달까. Y가 단순히 청년이 아니라 나이에 상관없는 ‘청년성’을 이야기 하는 건 Y가 새로운 문화, 새로운 삶의 길을 만들어나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청년 활동에서도 캠프, 교류, 봉사활동 다 좋지만 그걸 바탕으로 일상에서 대안적인 길을 모색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새로운 작업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나도 할 말 없다. 고민하는 중이며, 적어도 연세대 Y는 이 고민에 발맞추어 활동하고 있다. 이상하게도 청년포럼을 하면서 더 확실해졌다. 우리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활동이 정말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라고.
청년들이 Y활동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Y활동을 하고 있어도 그것에 진정성을 느끼고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이야기들도 오고 갔다. 사실, 연세대 Y도 인력난에 허덕이고 그 어려움이야 너무나 동의하는 것들이다. 홍콩참가자가 청년들에겐 취업문제도 있고, 돈도 벌어야 하고, 학점도 따야하고 식의 이야기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고개를 심하게 끄덕였다. 나 혼자 덧붙여보자면 지금 우리 시기는 계속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모색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이리저리 찔러보고 싶고, 단순히 하나에 미치기엔 이것저것이 다 궁금하다. 그러다보니 청년대상 프로그램은 캠프나 국제교류, 봉사활동에 그치고 청년들도 거기까지다. 물론 일반화시킬 순 없지만.
후에 GA에서 있었던 권역별토론시간에 이야기 하신 어떤 분 말처럼 그냥 한 청년이 캠프에서 무얼 느꼈다면 된 거고 청년들이 할 수 있는 활동은 그 프로그램을 계속 지속해나가는 것일까. 한 청년이 캠프에서 어떤 것을 느낀 것이 희망이고, 시작이라는 말은 동의하겠는데 그 시작 다음은?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나? 그것을 모르겠다. 다음을 생각하려 할 때, 친구들이 떠난다. 그들이 그들 삶에서, 무언가 느낀 그것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야겠지?
.차이, 그리고 도와 달라, 그러나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네.
어느 정도 경제력이 있고, YMCA가 자리 잡은 동아시아지역과 그렇지 않은 서남, 동남아시아 지역은 상황이 많이 달랐다. 그들에게 닥친 현실도 달랐고, 그렇기에 구체적으로 YMCA가 해야 할 일. 어려움도 달랐다. 그들이 해결해야 할 일은 기본적 생존권에 관련된 일이었다. 청년포럼에서 권역별 토론 후에 발표를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동아시아 지역은 두 팀 다 간단하게 끝났던 데에 반해 다른 아시아 지역은 전지에 이만큼 내용을 써서 나와서는 지금 우리 상황은 아직 YMCA도 기반이 없고, 돈이 부족하고, 사람이 부족하고, 뭐도 부족하고, 부족하고..... 말이 너무 빨라서 못 알아들었지만 그들은 너무나 간절했다. 그리고 말했다. 이런 어려움을 좀 도와달라고. 도와줘야 한다고. 응? 도와줘? 뭘? 일단 도와준다, 봉사. 이런 말들에 이유 없는 거부감을 가진 나는 살짝 갸우뚱했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니, 정말 그들은 뭔가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은 있는데 그것을 지속할 힘이 부족한 것 아닌가. 그들의 주체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같이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청년들의 논의는 권역별 토론 후 그것을 발표하는 것으로 끝났다. 우리가 그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의미를 두고 만족할 수도 있겠지만, 아쉽다. 원래 총회란 ~하자, 라는 식의 구체적 이야기가 나오는 자리가 아닌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GA토론시간에 몽골친구 하샤가 몽골의 어려움에 대해 말했을 때도 똑같은 상황이었다. 그냥 그렇게 아, 그렇구나. 한 채로 넘어갔다. 원래 그런 건가? 원래 총회란 그런 거고 각자 나라에 돌아가서 누군가는 그들과 관계를 맺고 지원해주고 한다면 딱히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되나?
.내가 그들을 바라보는 것
치앙마이 YMCA 활동을 견학하는 시간이 있었다. 한 팀은 대안경제로서 수공예품을 생산해서 공정무역을 하는 곳을 갔고 한 팀은 위기 청소년에 관련한 곳을 갔다. 그 날 밤, sharing에서 불쌍하다는 말이 계속 나왔다. 첫 팀은 견학하러 온 사람들을 위해 춤을 춰주고 악기를 연주하는 그들이 행복해보이지 않아 불쌍하다고 했고, 두 번째 팀은 그들이 살고 있는 우리가 보기에 최악의 환경이 불쌍하다고 했다. 난 왠지 모르게 불쌍하다는 말에서 굉장히 거리감이 느껴졌다. 우리가 목격한 현장과 우리 자신을 굉장히 분리시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끔 Y 활동을 할 때도 그렇다. 누군가를 만날 때 뭔가 그들을 대상으로 보고 내 판단에 그들을 가두는 나를 목격할 때가 있다. 물론 위에서 ‘불쌍하다.’ 라고 했던 말들이 마음이 아프다, 정도의 뜻인 건 알고 있다. 단지 그 말이 내가 오래도록 지녀왔던 고민 중 한 가지를 들춰냈다. 내가 그들을 ‘불쌍하다.’ 라고 내 기준으로 바라보지만 않고, 뭔가 그들과 같은 위치에서 그들의 삶을 느꼈으면 좋겠는데, 그들이 견학이 대상이 아니라 내가 아는 누구누구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하는 나의 오래된 욕심 혹은 고민 말이다. 이러려면 진심이 필요하고 부딪힘이 필요하고 시간이 필요하겠지 라고 생각하며, 치앙마이에서 내가 북치는 아이들을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던 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고 날 위로하고 있다.
.왜 당신은 30분씩 떠들어도 앉아서 밥을 받아먹고 박수만 치고 휘파람을 부시나요, 그리고 왜 당신은 우리 모두 손을 잡고 같이 손을 흔들면, 우리가 모두 하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고교 Y 아이들은 흥분했다. 태국 문화의 밤 때, 우리 밥 먹을 시간 뺏어가면서 연설했던 아저씨가 우리는 모두 뷔페식으로 각자 스스로 떠먹을 동안 그는 자리에 앉아서 편하게 누군가가 가져다주는 음식을 먹을 때, 그것도 VIP석에 앉아. 항상 평등을 이야기하는 YMCA가 이래도 되는 거냐고 흥분했다.
난 흥분했다. 문화의 밤 때, 어떤 아저씨가 열심히 휘파람부는 모습을 보고. 그것도 여성이 춤을 추자. 내가 민감한 건가 싶었는데, 수경이가 옆에서 저 휘파람 기분 나쁘지 않냐고 물어본다. 회의, 토론 때 그렇게 없던 사람들이 갑자기 문화의 밤 때 나타나서 노래 부르고 박수치고 좋다고 노는 것도 조금 웃겼는데, 거기다 왜 그 의미모를 휘파람을 크게, 그것도 오래도록 부시나. 꼭 여자가 춤출 때.
또 난 궁금했다. 뭐가 그렇게 친밀도가 필요한지. 단지 손을 잡고 같이 손을 흔들고 그러면 우리가 하나가 되고, 그렇게 우리가 연대하는 건가? 함께 해나갈 앞으로의 운동들은 잘 이야기 하지도 못했는데, 노래 부르고 손잡고 하면서 생기는 그 친밀감이 우리가 바라는 거였나? 물론 그것도 중요한 것은 알겠는데 너무 그것만 강조하고 좋아하는 걸 보면 오히려, 서로 간에 진심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중요한 이야기들은 따로 만나서 높으신 분들끼리 이야기하나 궁금하다. 토론시간에도 그다지 하는 이야기 없는데, 우리는 이렇게 손잡고 노래 부르고 공동체놀이 하면서 함께하는 시간이 참 행복하고 아름답구나 라고 느끼는 동안 따로 회의하시나?
.청소년 YMCA에 대해 가졌던 나의 오해
솔직히 말해 이번 총회에서 느끼기 전까지 나 스스로도 청소년 Y의 주체성과 운동성을 무시했던 것 같다. 아니, 무시했었다. 그들은 그냥 친구 만나는 게 재미있어서 Y를 하는 거라 생각했고 진지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진지와 안 진지를 구분하는 것도 웃기지만.)
그러나 내가 9박 10일 간 경험한 그들은 누구보다 자신에게 직면한 문제에 대해 민감했고, 그것에 대해 솔직하고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들이 꿈꾸는 세상이 있었고, 그걸 위해 Y활동을 했다. 물론 놀 땐 무지 잘 놀지만 말이다. 이전까지 ‘같이 이야기하기에는 말이 안 통할 것 같아’ 라는 식의 편견이 완전히 없어졌다. 아마, 이제부턴 내가 그들에게 상담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꼭 그들이 졸업 후에도 대학 Y 혹은 청년 Y의 모습으로 나와 함께 해주었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학교 와라, 아이들아.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
치앙마이는 환경이 그리 좋은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마치 치앙마이에서 분리되어 있다는 듯, 화려한 호텔 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켁켁대는 매연도 없고, 후끈한 열기와 습기도 없었다. 우린 누군가 제공해주고 있는 깨끗함, 편리함에 젖어 시원하고도 행복한 생활을 했다. 적어도 호텔에서 만큼은 에어콘도 팡팡 틀어댔고, 음식도 별 죄책감 없이 남겼다. 호텔의 수영장 물은 너무나 맑았고, 반면 호텔 뒤 저수지 같은 곳의 물은 누런색의 물이었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 둘러싸인 만들어놓은 깨끗함에 진짜, 죽어가는 환경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깨끗함을 만들기 위해, 자연을 더럽힌다. 요새 점점 이상해져가는 우리나라 기후와 갑자기 올해 들어 눈에 띄게 늘어난 이상한 ‘중국산 매미’같은 곤충을 보고 있자면 정말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땐 식상하게만 들렸던 환경을 보호하자는 말이 이제는 내게 절실해졌다. 권역별 토론 시간에도 공동운동주제로서 환경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제는 정말 미룰 수 없는 주제인 것 같다.
특히 아직 많이 개발되지 않거나, 개발 중인 나라가 중요하다. 그 나라들은 생존권 확보나 경제발전을 위해 환경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선진국들이 개발하느라 저개발국가에게 떠넘긴 오염물질이 얼마나 많은데, 그들도 개발하고 봐야지 하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지금 이 상황에 그들이 환경을 파괴하며 개발할 때까지 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또 반대로 과거에 자신의 행동은 생각하지도 않고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도 곤란하다. 방법은 그들 스스로 깨닫고 그들 스스로 바꿔나가는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 치앙마이 YMCA나 몽골 YMCA (내가 듣거나 목격한 환경오염 사례는 이 두 개 뿐)가 각 나라의 환경 문제에 대해 나서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앞으로의 총회에서는 아니, YMCA 모임에서는 영성, 연대, 심지어 지속가능성을 모토로 하는 YMCA이니 만큼, 그 모임 내에서 만이라도 환경을 지키는 실천들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예를 들어 에어콘은 필요할 때에만 적절하게 틀고, (이번처럼 추워서 긴팔을 입을 정도는 낭비 아닌가.) 음식은 먹을 만큼만 먹고 남기지 않도록 하자 (이번에는 뷔페식인데도 참가자들이 음식을 많이 남긴 듯,) 는 식의 정말 작은 실천 말이다. 초등학교 도덕책에 나오는 말 같긴 하지만.
아! 결국 난 우리가 일상에서 환경을 되살리는 운동을 하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해왔던 유기농직거래장터도 이와 연결되는 것이고, 계속 하고 싶었던 연세대학교 생협 바로 세우기(?)도 이와 연결되는 것이라 하겠다.
마무리, 어쨌든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건 새로운 힘을 주는 걸지도,
결국, 난 어이없게도 총회에 다녀와서 내가 YMCA를 계속 해나갈 힘을 얻어버렸다. 내가 Y를 해야 할 이유도 조금은 찾아버렸다. 지금까지 이렇게나 투덜댄 총회에서 적어도 2007년 내가 Y에서 하고픈 일들을 찾아버렸다. 그 시작은 총회 개선을 위한 제안서가 되 버렸고 말이다.
사실 토론과 활동에서 별 실질적인 이야기는 없었지만 YMCA라는 이름하에 그 많은 사람이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그 안에서 에너지는 꿈틀대고 있었을 것이다. 서로를 움직이는. 아마 그래서 허술함에도 불구하고, 그 거대한 총회를 지속해나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저 멀리 사는 사람들이 나와 나눈 생각을 가지고 그 어딘가에서 묵묵히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 어쩌면 외로울지도 모르는 길이 조금은 따뜻하지 않을까 싶다. (갑자기 나답지 않은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물론 이번 총회에서 나는 바다 건너 저 멀리 사람들까지 이 감정이 우러나오진 않았지만 적어도 우리나라 어딘가에서 활동하고 있을 고교 Y 아이들 정도에게 이 마음을 지녀본 달까.
아무튼 간만에 마음먹은 내가 지치지 않도록, 빨리 신입생모집이나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