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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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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의 책은 나에게 참으로 복잡한 감정을 안겨준다.
사실 난 '우'를 가까이서 본 적은 없다. 수업시간에 몇 번 청강했을 뿐이고 이리저리 들려오는 소문에 귀를 쫑긋했을 뿐이다.
난 '우'가 있거나 '우'를 중심으로 논의되는 장을(혹자는 이 공간, 여기에 있는 사람들을 '우'의 아이들로 부르는데 내가 누군가에게 '--- '아이들이라고 불릴 때 나의 기분은 어떠할 것인가 상상해보면 난 이렇게 부르고 싶지 않다. 또한 이들은 그들이 '우'의 아이들이라 사고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에너지로 움직인다.)가면 항상 설명 못할 소외감을 느낀다.

그러나 '우'와 '우'를 초대한 이는 항상 수업에서 '우정과 환대의 공동체'를 말한다.
나는 왜 그것에서 공허함을 느낄까.
내가 쫄아있어서 그런걸까. 내가 꼰대여서 그런걸까.  
'우'가 말하는 환대는 무엇일까. 정말 그들은 '환대'를 말하고 있는가. 곰곰히 생각해본다.

정말정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 느낌이다.
열등감인가. 여전히 내가 깨지기 싫어서 그런건가.

이번 '우'의 책 뒤엔 대학생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과가 같아 이름과 얼굴을 아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아는 사람도 있다. 쓰여있는 코멘트들. '우'는 그 친구들과 친밀한 사이일까. 내가 드는 생각은 그것이 먼저이다.
저 코멘트 대로 저 친구들은 힘들지만 '반짝'이는 '대단'한 존재일까.
책의 힘인지 '우'의 명성과 글발 덕인지 그 친구들은 참으로 '대단'해 보였다. 글은 언제나 그렇다.
또한 그들은 '우'의 환대를 받는 것 같았다. '우'의 지지를 받는 것 같았다.
여기까지 생각해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아 내가 질투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은 권위자의 지지인가. 권위자의 관심인가. 권위자의 칭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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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직도 그것을 잊지 못한다 . 다음번에는 좀 더 명랑하게요. 라는 코멘트.
난 무엇에 홀린 듯 그 말을 머릿 속에서 반복했고 결국 뜨거운 고구마라떼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뜨거운 것이 내 손에 튄 후에야 내 정신은 돌아왔고 그 몰골이란 끔찍했다. 참으로 수치스러웠다.
몇 번이고 내가 손에 힘을 더 주었더라면 하면서 자책했다.

나 그들에게 명랑하게 보이지 않았던 건가. 촌스러워 보였던 건가. 경직된 것처럼 보였던 건가.
나 나름 고민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한 거였는데. 그 말들, 방법들 식상한 것들이었어도 꼭 하고 싶은 말이었는데. 
그 일련의 거부의 기억은 언제나 내 발목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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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그들의 시선도 '타자'의 시선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알까. 아마 알겠지.
그들은 '타자의 시선'을 넘어서고자 하는 이들이고 그것의 옥죔은 너무나 잘 알고 있어 
그들 스스로 그 타자의 시선을 넘어서려 하겠지.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듯 하다. 쫄지마라. 넘어서라.
그것은(마치 그 계명과 같은 것은) 다시 초라한 나에게 또 한 가지 무서운 판단기준(?) 강박(?)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신자유주의의 그것/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강박/명랑,즐거움,어깨에 힘 뺌에 대한 강박

결국 그것을 넘어서지 못하는 건
내가 상상력이 부족하고 똘끼가 없어서 인가. 나에겐 똘끼 역시 잘난 사람들의 것이다.
스무해 넘게 모범생으로 살아온 나에겐 너무나 먼 이야기다.
그 똘기를 가져보려 스무살무렵부터 노력했으나 나에겐 두려움이란 산이 더 크다.
나만의 똘기는 '다음엔 더 명랑하게요'라는 말 한 마디로 잘려진다.

바로 이것이 내가 주구장창 말해오고 있는 찌질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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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여기서 나의 두려움을 짚고 넘어가야 할까.

.........안되겠다. 투비컨티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