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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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2009. 12. 13. 12:16
이불 속에서 정신만 깬 채로 뒤척이고 있으려니 계속 그 생각이 났다.
더 자고 싶은데 잠은 안 오고 목소리와 흐릿한 느낌이 반복된다. 오. 그래서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버렸다.
보일러가 집중 공격하는 동생의 방에서 잠들어서 인지 목은 칼칼하고 방안은 후끈한 공기로 가득하다.
햇빛은 들어오는데 눈에 보이진 않는다. 그림자도 없다.
그래 내일은 내가 잘 보고 싶은, 잘 하고 싶은 과목의 시험날이다. 주섬주섬 어서 글을 읽어야지.
거식증과 폭식증이라. 이원론의 축, 통제의 축, 젠더의 축.
아, 이건 그냥 내 이야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거식증, 폭식증이라 단정할 수 있는 증세는 아니지만
내 정신의 회로가 이러하다. 백날 읽으면 뭐하나. 난 아직도 나의 몸을 못살게 구는데 말이야. 흥.
이렇게 글 쓰기 전에 밑밥을 까는 건 쓰고 싶은 글이 있는데 또 뇌에 막혀서
잘 쓰고 싶은 마음에 막혀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이라는 표시이다. 음.
대부분 블로그에 있는 나의 글은 나에게 하는 나의 한탄이다. 청자도 없고 메세지도 없는 글들이다. 고로 글자는 나열되어 있으나 오로지 그것은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이다. 참 착하게 글을 쓰는 그를 보면 질투와 함께 그것을 깎아내리고픈 충동이 든다.
하지만 그러기에 그의 글은 매우 깊은 소화를 거친 참으로 찰진 메세지이다. 그래도 와우 너무 멋져요, 정말 멋진 사람이에요 라고 누구처럼 칭찬하긴 싫다. 왜 그럴까. 그것은 아마 나는 그런 글 쓰기가 안되기 때문일거다. 그의 글을 부정하고 싶진 않으나, 그의 글을 매우 의미있다고 생각하나 나는 그러한 글쓰기가 안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글쓰기를 할 때 결국 나는 스트레스를 받고 나의 감정은 풀리지 않기 때문일거다. 뭔소리를 하고 있는 거냐.
세상에 대립(?)하고 있는 두가지가 있다고 할 때, 그 둘은 그 둘만의 논리로 서로를 분석하고 해석한다.
그리고 그 둘 중 어쨌든 하나의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지향한다. 나의 눈엔 왜 이리 그 두가지가 잘 보일까.
그래서 현혹되기 쉽다. 그 두가지가 마치 똑 떨어져있는 것 처럼 하나의 위계관계가 분명한 것 처럼, 그 두개 존재의 사회적 의의가 완전히 다른 것 처럼 착각하기 십상이다. 아. 갑자기 왜 레비스트로스가 생각나지.
아, 무튼 어쨌든 그런 두 가지 것들은 마치 권위있는 타자의 시선의 모냥을 한채 내 뒤를 졸졸 쫓아댕긴다.
결국 그러다 나는 그 두 시선에 KO당하고 마는데, 그 순간 나는 나의 KO에 두 가지 중 어떤 힘이 더 많은 영향을 미쳤는가를 분석해본 다음 그 반대의 것의 논리를 섭취한다. 그리고 그 논리는 당분간 나의 지침과 나의 변명과 나의 정치에 이용된다.
그러나 이것은(두 가지 중 나의 KO에 더 많은 기여를 하는 한 가지) 언제나 가변적이어서내 안에서 나는 끝없는 변절을 행한다. 그리고 이 변절은 나를 한 없이 자신없게 만들어서 점점 내가 딛고 있는 땅을 늪처럼 변하게 하곤 하는데 이는 꽤나 견딜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역시 회색인가. 이 블로그의 색처럼. 회색으로 사는 건 외롭고 눈치가 보이고 결국 흰색이나 검은색의 빛에 눌려 내내 켁켁 거려야 하는 인생이다. 오오.
또 마구 일기 쓰고 있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어쨌는 노래도, 그림도, 이야기도 만들기도 지금 나에겐 순간이고 강박이다.
그러고 나니 난 텅 비었다. 텅텅. 통통. 둥둥.
빈 곳엔 분노가 쌓이고 있는가?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