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2009. 12. 11. 16:37


존 스튜어트 밀이 말했듯이 피억압의 정도가 강할수록 그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언제나 더 많은 언어와 근거와
이유와 명분과 정당성과 오해불식의 언어들을 구비하고 늘 입증해 내야 한다.
(심지어 성폭력 피해자에게까지 그것이 피해임을 입증해 내라지 않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기존에 존재하는 언어가 그들을 위한 언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집단이 더 많은 양의 언어, 혹은 더 섬세하고 정교한 논리를 개발시킬 수 밖에 없는 것은
그 만큼 그 집단에 대한 세상의 공포와 불안에서 비롯된 신화가 많이 포진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페미니즘포비아 사람들이 가장 못견디는 것은 '남성으로서의 나를 나'이게 만들어 주기 위해
비역사적 존재로서 동원돼 주어야 하는 '여성 타자'들이 '언어'를 갖고 '역사 속'으로 진입해 들어왔다는 것이다.
이건 고용할당제에 의해서 내 취직 밥그릇 수가 몇 개 줄어들고 마는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존재를 완벽하게 다시 재정의해야 하는 문제가 된다.
기존의 나를 부정하는 일은 세상을 다 바꾸는 것보다 더 공포스러운 일이다.



'페미니즘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인가? ,  벨 훅스 행복한 페미니즘 서평. 민가영, 여성학 논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