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2009. 12. 11.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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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내볼까. 화화화.
나는 화를 못내서 순간 쌩뚱맞게 목소리가 커지거나 눈을 못 마주치거나 그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을 아니꼬워한다.
흥흥쳇쳇. 그러다 혼자 집에가서 뭘 막 먹은 다음에 다시 좀 착한 마음을 먹는다.
그런 다음 그 사람을 만나면 예전에 내가 그랬던 게 미안해진다.
책상에 머리박으며 난 왜 또 이런 못된 마음을 먹었지? 한다. 그러면서 마음 속으로만 오열한다.
이런 바보같은 과정을 거치는 이유는 분명 내가 화를 못 내서다. 난 차가운 도시여자가 아니니까요.
화를 어떻게 내야 할지 화를 낸 다음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와 같은 상황이 될까봐 무섭다.
화를 내는 내가 성급할 것 같아 무섭고, 결국 내 잘못인 걸 알아버릴까봐 무섭다.
자기검열이 너무 심한 건가. 자신에 대한 확신 비스무리한 것 조차 없어서 그런 걸까.  
화도 혼자 내고 혼자 화해하고 혼자 웃는다. 이거 쓰고 나니 나 굉장히 불쌍해 보인다. 호호.
갑자기 현미킴의 말이 생각난다. '너의 어머니도 너처럼 외톨이시구나'
현미킴은 내가 외톨이인 걸 어떻게 알았을까?! 깔깔 거리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 난 외톨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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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가 무섭다.
정말 그렇구나. 말하기는 그냥 말한다고 되는게 아니구나.
말하는 건 발화자만의 문제가 아니구나.
말하기는 듣는 사람과 함께 만들어가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봤을 때, 난 정말 말할 곳이 없네. 하는 생각이 든다.
누가 내 이야기를 들어줄까. 이 지겹고도 지겨운 이야기를.
누가 판단하지 않고 들어줄까.
그래 무엇보다 내가 들어주는 사람이 못 되어서 결국 난 내 스스로 죄값을 치루는 거다.
들어주지 못하는 내 곁엔 말하지 못하는 내가 있을 뿐이다.
아니, 똥오줌 못 가리고 아무데서나 내 말을 쏟고 싶은, 잘나보이고 싶은 내가 있어서
후에 수치스러움만 가득해지는 내가 있다.
나의 말은 허공을 타고 올라가 내 눈 앞에서 터지고 그건 상대의 묘한 표정과 어우러져 나에게 수치감만을 남긴다.
사랑은 향기를 남기는 게 아니라 수치감을 남긴다. 이건 뭔소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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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생각해보니 난 나에 대한 오덕이구나.
남들은 그래도 한 분야의 오덕이라 전문지식도 있고 적당히 허세도 부리고 적절한 준거집단도 만나고 그러는데
이 안타깝고 제기랄한 나는 나에 대해 오덕이다. 자기오덕이라고 이름을 한 번 만들어볼까.
난 나의 모든 찌질함을 비교분석, 찌질함 대회에 나갈 수 있는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으나 이것은 전혀 쓸모가 없다.
그냥 나랑 대화할 때 좀 편해질 뿐이다. 이런 걸론 허세도 못 부리고 (가끔 난 찌질한 도시 여자에요, 뭔가 있어보이지 않나요 하는 허세를 부리긴 하지만..) 글도 못쓰고 뭘 만들지도 못한다. 당연히 준거집단도 없다. 나에 대해 전문지식을 가진 인간이 누구와 함께 지낼 수 있을 것인가. 뺑뺑 도는 나와 고맙게도 이런 나를 친구라고 생각하는 몇몇의 이들만이 있을 뿐이다.
아니, 뿐이다가 아니라 난 이들에게 절이라도 해야 한다. 얼씨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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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진상
이런 된장
이런 진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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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도 훈련이고
글도 훈련이고
공부도 훈련이고
삶도 훈련일진대
난 왜 그 훈련과 연습을 무서워하며 위태위태하게 서 있을까.
나 아는데 알고는 있는데 태어날 때부터 천재에다가 혼자 막 피어나는 꽃은 없는 거 알고 있는데
왜 난 지금 이 나이 까지도 어쩌면, 혹시나, 사실은........내가 그럴지도 모르는 거라고 생각하면 살고 있을까.
호호 난 멍청이인가 봐요. 오만방자교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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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넌 연애해라. 난 땅 파겠다.
 
내 안이 깊다한들 땅 위에 생물이로다.
파고 파고 파다보면 구멍 안 날리 없건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