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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2009. 5. 13. 00:43
(내가 5.18이라고 쓰는 이유는 딱히 그 뒤에 뭐라 붙여야 할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학살도 맞고 민주화운동도 맞고, 항쟁도 맞는 것 같다. 다들 5.18의 부분부분을 나타내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지금 우리는 5.18을 어떤 단어로 정의할 수 없다. 5.18의 경험이라는 것은 그 당시 개개인에게는 너무나 가혹하고 강렬해서 차마 설명할 수 없는 것일 것 같기 때문이다.)
1.
5.18을 떠올리면 사진들이 생각난다. 방망이로 맞는 시민들, 옷이 벗겨진 채로 손이 묶여 연행되는 사람들, 도청 앞에 일렬로 죽 늘어져 있는 시민들의 시체. 20여년이 흐른 지금 난 당시에는 꽁꽁 싸매져 쉬쉬 되었던 그 현장을 교과서에서 민주화운동의 대표적인 역사적 사건으로 만난다. 또한 그것은 지금 여기에서 드라마, 영화, 소설, 만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계속 재해석 되고 의미를 부여받는다. 그러나 어떤 방식이든 결국 그것은 나에게 지독한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분노로서 다가온다. 여기서 말하는 공포와 분노는 5.18이 가진 사회적 의미가 불러일으킨 실천적 감정의 폭발은 아니다. 정말 단순히 한 인간으로서 느끼는 공포다. 공수부대가 앞뒤없이 대검과 철심이 박힌 방망이를 휘두르고, 내가 어제까지 인사하던 이가 피투성이가 된채 도망치고...아빠가 집에 들어오지 않아 도청 앞에 가서 시체 하나하나의 얼굴을 확인했다는 할머니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몸서리를 쳤다. 그 상황에서도 민주화를 외쳤던 이들의 지독함, 그에 대한 경외감, 죽음을 매일 목도하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라는 분노가 혼합되어 나를 휘감는다. 그 때 내가 광주에 있었더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곤 이내 자괴감에 빠지곤 하는데 그 생각과 자괴감 저변에는 어쨌든 나는 결국 그 때 광주에 있지않았다라는 일말의 안도감이 숨어있다.
2.
내가 이렇게 5.18에 대해 끄적이고 있는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5.18은 5월 중에 학내 단체 중 적어도 하나는 꼭 언급하는 사안이어서 굳이 난 말하지 않아도 되는데.. 이제 5.18은 사람들에게 역사 속에 파묻힌 먼 이야기가 되어버렸는데... 4.19/5.18/6.10처럼 그것은 수많은 사건 중에 하나, 날짜와 고정된 의미로만 존재할 뿐 그것은 지금 우리와 어떤 대화도 나누고 있지 않은데... 그런데 부쩍 요즘 난 그 때의 광주가 생각난다. 지금의 권력과 그 때의 권력이 오버랩 되어 앞에 나타나는 것은 나 혼자만의 증상일까. 그 때 광주를 휘감았을 법한 공포와 불안, 죽음, 절망의 기운이 지금 한국에도 깊게 내려앉은 느낌이다. 매일 아침 '나는 이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못한 채 뭐하는 짓인가'라는 자괴감이 견디기 힘들어 뉴스보기를 거부하는 나는 죽을 각오를 무릅쓰고 금남로로 뛰쳐나왔던 광주시민들을 만나고 싶다. 그 말도 안되는 시공간 속에서도 삶과 희망을 살아냈던 그들은 내게 어떤 말을 해줄까. 만약 그들이 너는 나의 죽음 앞에 어떠한 응답을 했냐고 물어본다면 난 뭐라고 해야 할까.
3.
현 정부에게 더 이상 보편적인 시민 - 생명의 개념 따위는 없다. 무자비한 연행과 억압은 과연 지금 여기가 교과서에서 '민주화운동'을 배우고 있는 2009년 한국 맞는가?라는 물음을 갖게 한다. (1년 겨우 넘은 MB정권 하에서 이 말을 얼마나 많이 내뱉었던가) 이 정부는 물리적 폭력과 함께 말과 글, 표현, 생각, 내 즐거움 그 모든 것에 대한 교묘한 억압을 자행한다. 단순히 소박한 삶을 영위하고 싶었던 사람들은 벼랑 끝에 몰려 죽었다. 그것도 자신의 신변을 지켜준다고 믿었던 국가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그들의 생명은 연일 '이슈'로서 이 한국의 허공을 떠 나녔다. 지겹도록 떠다녀 먼 일이 아님에도 마치 먼 예전의 일처럼 '용산참사'라는 화석으로 존재하는 듯 하다. 도대체 어떤 성장과 어떤 평화를 이루기 위해 계속 이런 폭력을 자행하고 희생을 요구하는걸까. 생명은 고작 이정도 취급을 받는 건가. 누구를 밟고 죽여야만 행복이 오는건가.
덕분에 우리는 서로를 미워할 수 밖에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철거민의 죽음도 경찰의 죽음도 모두 참담한 죽음일진대 상황이 너무 뜨악하고 억울해서 철거민의 죽음만을 애도하고픈 무서운 시대에 살고 있다. 시민의 몸도 전경의 몸도 모두 생명일진대 전경의 몸은 마구 때려도 괜찮을 것 같고 때리고 싶은 그런 무서운 시대다. 마지막으로 이 시대에 그래도 살겠다고 먹고 잠자고 학교 다니는 나를, 행복하겠다고 궁리하는 나를 한심해하고 미워할 수 밖에 없으니 이건 뭐 말 다했다. 아니 뭐 사람들을 행복하게도 안 놔둔다.
4.
정말이지 발벗고 거리로 뛰쳐나갔던 광주시민들이 그리워지는 시점이다. 칼-총 앞에서도 스스로 뛰쳐나와 결국 무자비한 폭력으로 전락한 국가를 부정하고 그들 스스로의 국가를 세워 발언하고 논의하고 서로를 껴안는 그런 힘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을까. 지금의 우리가 '절대공동체'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러한 형태의 자치 공동체(몇몇 학자들은 잠시 공수부대가 빠져나가고 광주가 고립되었을 그 당시 광주에 형성되었던 이상적인 시민공동체를 '절대공동체라 부른다.)를 만들어 낸 그들의 경험은 얼마나 간절하고 피 끓는 것이었을까. 나에게도 그런 용기와 힘, 그리고 사랑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 그것이 쉽지 않고 그 쉽지 않음은 끊임없이 날 좌절하게 만든다. 그러나 한편으론 광주의 그 때를 그냥 대단한 한 때로, 동경의 대상으로 가둬두고 싶진 않다. 또 그것이 나를 좌절하게 하고 갇혀있게 만들고 싶지도 않다. 80년 그 때 시민들이 사랑과 자유,만주화,생명이라는 물음을 5.18을 통해 던진 거라면 난 지금, 한국의 5월을 살고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응답을 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고 싶다.
5.
상처투성이 지금이다. 우리는 아직도 어떤 이의 희생을 통해 세상은 진보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을까. 철거민의 생명이 부동산대국을 만들고 그것은 경제대국을 만들 것이라고, 농민의 생명이 수출강국을 만들 것이라고... 결국 우리의 생명이 나와는 상관없는 그것을 만들기 위해 희생될 때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그리곤 나는 다시 나에게 되묻는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래 중요한 건 여전히 나는 무력하다. 그러나 그 5월을 기억하고 있다고 노력하고 있다고 그 때 5월의 광주에게 응답하고 싶다. 그래 이 글은 바로 그래서 쓴거다. 그래서 이 축제의 시즌 5월에 이런 글을 쓴거다. 너와 나 그리고 지금과 그 때의 5월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P.S. 오우 정말 두서가 없다. 결국 난 함께 아파하고 함께 응원하자는 말을 하고 싶다. 그냥 지금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큰 짐을 진 느낌일테지만 이 짐은 단순히 나의 짐만도 아니고 나 혼자 질 수 있는 짐도 아니다. 내 짐은 니 짐이고 니 슬픔은 내 슬픔이다. 그 때의 아픔과 슬픔을 기억하면서 09년 5월 지금의 아픔 슬픔을 애도하자는 말을 건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