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교토/오사카
2010 교토, 12.7
경계
2011. 1. 1. 21:31
도착.
1.
간사이 공항에서 교토에 가려고 웨스트레일프리패스를 끊었는데
끊고 돌아서서 캐리어를 끌자마자 캐리어의 손잡이가 부러져버렸다.
한국에서부터 아슬아슬하더라니, 한 쪽으로만 질질 끌고 다녔다.
2.
하루카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다.
짐 많고 나처럼 초조한 초행길인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탑승할 때, 짐 바퀴가 빈 공간에 걸려서
어쩔 줄 몰라하셨다. 안녕행 하며 발전한 거라고는 상대방에 대해 빠르게 반응할 수 있게 된 것.
나도 모르게 짐을 올려드렸다. 가벼운 줄 알고 덤볐다가 생각보다 너무 무거워서 똥구멍 빠지는 줄 알았다. 그렇게 그 분과 같은 칸에 탔다. 그 분은 나보다 먼저 오사카에서 내리셨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일본어로 뭐라뭐라 이야기하시더니 감사 인사를 하시더라. 몸 둘 바 모르게 고개만 끄덕였다.
나도 아는 일본어 아리가또-만 동원해 인사를 했다. 무언가 뿌듯하다.
긴장이 조금씩 풀리는 것 같다.
3.
교토역에 내리기 생각보다 너무 크다. 퇴근길에 사람들도 너무 많다. 캐리어를 한쪽만 질질 끌고 다니기에는 민폐다. 아, 이렇게 큰 곳이었구나. 다행히 교토역 까지는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기 때문에 무리없이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깜깜한 밤이다. 시간이 아직 일곱시인데 온통 까맣다.
번화가를 구석구석 지나, 드디어 도부츠 마에, 동물원 앞이다.
주거동네인가보다. 나 말고 다른이가 벨을 눌러 내릴 수 있었다. 다행히 캐리어는 무리없이 옮겨 내릴 수 있었다.
4.
이거이거 너무 까맣다. 정말, 조용한 동네다.
버스정류장 앞은 공원인 것 같은데. 과연 내가 게스트하우스를 찾을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골목은 여기가 맞는데 게스트하우스는 안 보인다. 너무 많이 들어갔나 싶어 처음 시작한데서 다시 보았더니, 아까까지는 분명 안 보이던 미술관 표지판이 보인다. 아, 저기로 들어가면 되는구나.
찾았다, 게스트하우스 앞이다. 어떻게 하면 되지. 그냥 들어가면 되나. 긴장 백배.
진짜 일본식 옛날 집을 개조한 곳이다. 낡고, 좁다. 갑자기 내 캐리어가 부담된다. 내 신발의 끈은 왜 이리 꽉 매었던가. 신발 벗는데만 한참 걸렸다. 문을 열고 한 마디만 던졌다. '헬로'
5.
예약이 되어 이미 내 이름이고 뭐고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왜 이들은 처음 듣는 것 같이 듣고 있을까. 어쨌든 짧은 일어, 짧은 영어를 통해서 서로간의 필요한 정보를 주고 받았다. 꿈인가 생시인가.
내가 외국인이랑 홀홀단신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니.
6.
게스트하우스의 스태프가 일본 노래 들어본 적 있냐고 물어봐서 쿠루리 좋아한다고 했다.
알고 보니 쿠루리의 엄청난 팬인 게스트하우스 스태프. 얼마전 라이브도 다녀왔단다.
갑자기 피아노를 치며,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었다.
당황했다. 그리고 고마웠다.
사람을 만날 땐 언제나 아쉬움이 남는다.
생각해보니 이름도 안 물어봤네.
덕분에 쿠루리 노래를 다시 듣게 되었다.
7.
아쉬움과 부끄러움을 남기고 2층, 도미토리로 돌아왔다.
짐을 풀고 침대에 들어가 잠시 우왕좌왕했다. 내려가서 더 이야기를 해야할까.
아까 내가 한 말을 잘못 알아들었으면, 그건 실례일텐데...
정말 시킨대로 하이웨이 기타 연습을 하고 있어야 하나.
그러다가 다시 내려갔더니 이미 거실엔 없다. 다행 반, 실망 반으로 이빨을 닦고 세수를 했다.
뜨거운 물을 어떻게 켜는지 모르겠다. 우선은 스태프가 안 보이니 찬물로 씻었다.
내일 아침을 걱정하고 있다. 샤워해야 하는데....
8.
침대에 누워 오늘 하루를 돌이켜본다.
왠지 꿈만 같다. 몇 시간이 지나니, 나는 아는 사람 한 명도 없는 교토에 떨어져있다.
걱정했지만 숙소도 찾았고, 저녁을 못 먹어 배는 고프지만 나에겐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내일이 있다. 쿠루리 노래를 통해 상상하지도 못했던 만남을 했다. 숙소는 생각보다 더 세월이 느껴지고, 문화적 취향? 감수성도 강하게 느껴져 재미있을 것 같다. 무언가를 적고 싶으나 전혀 적히진 않고 적응되지 않은 추위를 느끼며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분명 아침은 오고 내일은 상상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