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기록

졸업식

경계 2011. 2. 28. 16:20



친구 졸업식이 끝나고 괜히 비싼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며 노닥거리고 있었는데 왜인지 침울해져 각자 찻잔만 쳐다보고 있었다. 물론 동아리의 존폐위기(?)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와서인지도 모르겠다. 괜시리 '까놓고 말하면' 이라는 말을 붙여가며 시니컬하게 말하게 되었다. 왜였을까. 무언가 이 조직에서 내가 우월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가. 집에 오며 생각하니 부끄러웠다.

졸업한 친구에게서 그 자리로 가도 될까 라는 물음을 들었지만, 카페가 1인 1메뉴 주문인데다가, 우리의 분위기도 별로 여서 그냥 돌려서 오지 말라고 해버렸다.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었다. 각자 다음학기 이야기를 했지만 그다지........ 카페의 음료는 맛은 별로이나 양은 많아, 일어나자고 하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계속 앉아있자니 괜히 그들에게 내가 심술을 부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먼저 일어나겠다고 말하고 걸어나왔다. (난 이러면 다 같이 헤어질 줄 알았으나 아니더라)
아직 복작복작한 기운이 남아있는 신촌을 떠나 홍대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집까지 걸어갈 작정이었으므로... 왠지 먹었으니 차비는 아껴야지! 하는 마음? 점점 주변의 사람이 없어졌다. 바람은 다시 매서워졌고, 햇빛은 사라진 오늘이다.

그렇게 걷다가 갑자기 희안하게 뭔가 쇼핑욕구가 불타올라 에이랜드에 들어갈까, 유니클로에 들렸다갈까, 옷 가게 많은 골목으로 갈까, 아이띵소에 갈까, 호미화방에 갈까 별의별 생각을 하며 걸었으나 결국 이 내 상태론 들어가도 어정쩡 하게 구경도 못하고 얼마 안 있다가 뻘쭘하게 나올게 뻔했다. 뭘 구경해도 눈에 안들어올테니까. 가격에 놀라 사지도 못할 테니까. 무언가 욕구불만인 상태인 것이 분명한 것이 자꾸 폭식을 하고 싶은 욕구와 옷을 사고 싶다는 욕구가, 얼렁 s/s 시즌 옷차림을 준비하여 조금 사회인 스럽게 학교를 다녀야 하나?라는 불안감이 증폭했다. 보통 그렇다, 무언가 시원찮을 때 괜히 돈을 써버리고 싶다. 그것이 이 사회에서 나를 가장 '쿠울---'하게 표현하는 방법이다. 그렇게 이런저런 궁리를 하며, 어떻게 돈을 써야 난 이 기분을 반전시킬 수 있을까 생각하며 걸었다.

뭐 어쨌든 그러다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고, 홍대정문앞을 지났다. 그런데 그 순간 발견한 횡단보도 앞에서 뽑기 장사를 하는 아주머니 얼굴이 낯 익다. 맞다맞다. 신촌 지하철 역 맥도날드 앞에서 매일 아침마다 어학원 찌라시를 나눠주는 아주머니다. 항상 그 분 앞을 지날 때마다 내가 어디서 봤지 어디서 봤지 하던 차였다. 맞다. 난 여기서 본 것이다. 매일 홍대 맞은편 은행 앞에서 뽑기를 파시는 그 아주머니였던 것이다. 그 순간 무언가 댕 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 난 어떻게 돈을 쓸까. 돈을 써서 어떻게 이 그지같은 기분을 해소할까. 어떻게 돈을 써야 가장 효율적으로 이 세상에 나도 살아있음을 외칠까를 생각하던 중이었다. 그러나 그 아주머니는 그 놈의 돈을 벌기 위해 투잡을 뛰고 계신 중이었다. 둘 다 과연 돈이 벌릴까 하는 직종으로다가.... 그저 나를 차도에 던져버리고 싶은 순간이다. 이 돈보다 그지 같은 인간아! 라고 외치며. 뽑기를 사먹을까 했지만 단 건 당췌 내 취향이 아니라 그냥 말았다. 내일 신촌에서도 만나게 될까 그 아주머니? 결국 난 아무것도 사지 않은 채 그러나 여전히 뒤 닦다 만 찝찝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친구의 생일 케익을 먹어버렸다. 그러니까 거짓말 같이 40%는 나아졌다. 그 기분이. 그 아주머니도 케익을 드시면 40%는 나아지실까.


총체적으로 알 수 없는 졸업식이었다.
8월에 있을 나의 졸업식이 심히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