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기록

끄적였던 것들, in Chiang Mai

경계 2007. 9. 23.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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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삶으로, 생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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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결국 나에게로 돌아오는 그것, 나를 해결하면 될 것 같은 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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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 항상 내리고 싶지 않으나 나를 차별화시키고 긍정하기 위해 내리는 (거짓?)판단,
        그것에 매달려 있으면 거짓 판단이 되는 거겠지
            하지만 또 밀려오는 자리 or reflection
               괴롭고 인정하기 싫어 미루고 미루지만 결국 인정하게 되는 나라는 존재
                  그리고 그것을 표현함으로써 시작되는 나의 치유
                     그러나 거기서 다시 판단과 집착이 시작되고 규정이 생기면
                        다시 시작되는 나의 억압
                           반복적인 이것의 균형을 맞추는 것
                             
                              이 과정에서 끊임없이 만나게 되는 여러모습의 나와, 하느님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있어서의 영성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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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차별화, 그러면서 느끼는 외로움
  나는 다른걸까, 다르고 싶은걸까
     나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
        이 나의 모습은 식민적 이미지가 지배하고 있을지도
 
          어쨌든, 나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은 좀 더 무뎌지는 것 or 나를 신뢰하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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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그 때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올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그것은 숱한 깨짐없이는 오지 않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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얽매이지 않는 것
  나를 끊임없이 보는 것,
     나에게 찬찬히 다가오고 계시는 그 분을 느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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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밑을 보는 것
   생명을 보는 것, 이론의 물흐름만 가지고 끄덕이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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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가지고 있었던 청소년, 혹은 나이에 대한 편견
  모를 것이다, 도와줘야 할 것이다, 혹은 천박하게 말해
    깨어있지 않아서 함께하는 이가 되지 못할 거라는 것
      그러나 오늘 느낀 건, 그건 모두 나의 착각이었구나
       
          내 말처럼 누구나 믿고 기다려 주면,
           자신을 보고, 자신의 위치와 비전을 보고 거기에서 나의 문제와 사회문제를 만나고
           
             그래도 한가지 걸리는 것, 이 과정에서 '개입' or 함께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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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
내가 그들 앞에서 부끄러워 하지 않는 것
그들이 내 앞에서 부끄러워 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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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음 사람, 다양한 성향
이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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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가면 조금씩, 아주 조금씩 보이고 느껴지는
나를 키우시는 하느님,
아직 그 방향은 모르겠지만, 끝까지 안 알려 주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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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렇게 믿어주는 것,
정말 누구에게나 맡은 부분이 있는 것 같은
그리고 나의 그것은 무엇일까



내가 정말 하느님이란 말을 부끄러워 하지 않으며 하게 되었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