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대한 유치한 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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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은입니다.
해가 지는 저녁 뉴질랜드 크라이스트 처치 입니다.
저는 마음이 아픕니다. 왜요?
음, 모르겠습니다. 세상의 그 모든 것들은 뒤엉켜서 삽니다.
맞아요, 뒤엉켜서요.
- 근데요, 뭐요? 그게 중요해요? 그게 지금 당신의 게으름을 설명할 수 있나요?
뭘 또 게으름 이야기를...그게 아니라, 세상은 뒤엉켜서 산다구요. 내가 사는 이유가 없어진 거에요.
우리는 바꿀 수 없어요, 아마 모든 것은 돌고 돌아 제자리일 거에요.
과연 경제 시스템이 바뀌면 그 모든 것이 바뀔까요.
어쩌면 우리는 내 안에 고통을 한 웅큼 가지고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할지도 몰라요.
세상을 바꾸는 방법에 앞서 견디는 방법, 그것이 더 현명할지도.
- 그건 변명 아닌가요, 해보지도 않았잖아요. 세상은 더 빠르게 더 고통스럽게 바뀔거에요.
신기한 건 그래도 당신과 나는 살고 있다는 것이죠.
세상은 변하고 인간은 살아갑니다. 매우 거칠게 설명해보자면, 그것도 매우 비슷하게.
이 고통은 저 곳으로 옮겨가고, 이 고통이 보이면 저 고통은 고름이 터질 듯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썩고 있습니다.
- 당신의 그런 말은 결국 그 모든 것을 그냥 견디고 살자는 이야기인가요. 훗, 당신은 별로 고통스럽지 않아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난 고통이 그 고통이 없어질 것 같지 않아서에요. 당신과 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고리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때로 서로에게 고통을 주는 원인이 되기도 하고 덜어주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 고통 자체는 매우 복잡한 존재라 그 원인이 당신과 나 사이에 그리고 우리 둘도 아닌 제 3의 곳에 나뉘어져 있어요.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고통을 없앨 수 있다. 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맞는 걸까요.
아님 그 고통을 눈에 보여주는 것이 혹은 나도 아프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더 맞는 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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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습니다.
고름이 터져나오는 고통.
가끔 숨이 막힐 것 같은 고통.
하지만 난 살고 있고 내일도 살아있을 것이고, 웃기도 하고 가끔 그 고통이 싹 사라지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