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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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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엔 당위였다. 그래야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선이라 생각했고, 그것이 답이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는 그렇게 한다면 난 칭찬받을 것 같았고 칭송받을 것 같았고, 명예로울 것 같았던 것 같다. 그렇게 나의 있을 곳을 헤매이다 겨우 마음과 몸을 붙였고, 적응해나가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경험들도 쌓여갔고 시간도 그렇게 흘러갔다. 물론 지금도 난 그렇게 멈춰서서 지나가고 있지만, 실려가는 느낌이다. 내가 해왔던 대로 그것 그대로 서서히 서서히.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문득 들고, 여전히 당위성의 칼날은 나와 상대를 억압한다. 내 목소리가 듣고 싶다. 그렇게 크게 달라질 나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 당위성이 나의 인생에 찾아온 것도 어찌 보면 나의 운명이고 나의 목소리이기 때문에. 어쨌든 그것이 그 때 나에게 들려온 나의 목소리 였다면 이제는 좀 더 늙은 나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 저 밑에서부터 스물스물 올라오는 나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그래서 좀 더 침잠하고 싶고, 좀 더 읽고 싶고, 그렇게 좀 더 만나고 싶다. 시간을 두고 곰씹고 곰씹어서 그것이 나의 심장이 다가올 때 까지 기다리고 싶다. 그래, 기다리고 싶다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잠시 멈취서 쫄래쫄래 내가 잘 따라오고 있나 손을 흔들고 싶다. 나의 목소리를 만나 그와 이야기하고 싸우고 뿌리를 내리고 손을 내밀면 좀 더 듬직하고 우직한 내가, 좀 더 자신감 있는 내가 나오지 않을까. 

 2.
쪽빛. 서원. 인디고 서원. 그리고 에코토피아.
꿈꿀 수 있을 것 같은 공간
서로의 뿌리가 얽히고 섥혀 단단히 내리박을 수 있을 것 같은 공간
자신의 목소리를 들은, 듣고 있는 이들이 복작복작할 것 같은 공간

3.
나의 목소리와 손을 잡은 그 때는 내가 너를 '비움'의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이고 너의 명랑이 더 이상 질투가 되지 않을 때이며 나를 끌어안아 네가 긍정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말하고 움직일 수 있는 그 때일 것이다. 투박하고 촌스러운 나의 당위성과 비루함과 과격함이 나에게 알맞게 맞는 옷이 되어 나의 자리에서 계속 움직일 수 있을 그 때.. 숨어서 너를 지켜보며 네가 긍정하는 것들 중에 나는 얼마나 부합하는가를 소심히 세 보지 않아도 내가 가는 길이 그래도 길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을 그 때.

4.
멀리 가려다 쉬고 싶은 길 위에 문득 너는 있다. 

5.
한 가지 걱정인 건 이 모든 것이 나의 합리화일까봐. 그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