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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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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먹고 앉으면 머리가 하얗고 의욕이 없어진다. 
무어라도 남겨야지. 이 거대한 시간과 사소한 시간 속에 무어라도 남겨야지 싶어  자리잡고 나면 뭐 그렇게 지나가라지 하고 만다.

급하게 걷고 나면 숨이 찬다. 지하철 계단 오르는 것 만도 지친다. 흡 - 하고 크게 숨을 쉬고 나면 금새 늙어버렸나 싶다. 폐렴을 이렇게 대단히도 앓는단 말인가. 아니다. 의사는 나에게 폐와 흉막에 있던 염증은 거의 다 사라졌다고 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흉통과 기침이다. 기침은 나에게서 떨어질 생각을 안한다. 발작같은 그것이 시작되고 난 뒤엔 그렇게 세상이 짜증스럽고 내 몸은 푹 고아낸 뒤의 닭 뼈가 되버린다. 기침이 그렇게도 온 몸을 이용하는 것이었는지.  

나아질 듯, 그 조금 불편한 고통이 사라질 듯 하여 잠시 긴장하고 섭섭해하였더니 그것들은 다시 감기를 끌고와 내 옆에 며칠 더 머물고 있다. 막상 그들을 붙잡아 두고 있자니 안심이 되기도 하면서 부끄럽기도 하면서 화가 난다. 그들이 나를 떠나간 뒤 할 일을 밤마다 상상했었는데 막상 그것들이 떠나갈 것 같으니 내일 따윈 나에게 부담스럽기만 하였다.

도망치듯 짐을 싸서 내려왔다. 필사적으로 침대 안에만 있었다. 있고 싶었다. 그럴 수록 몸은 거기에 맞는 핑계를 알아서 만들어 주었는지도 모른다. 광화문 여의도 트위터 페이스북 스마트폰이 들끓는 동안 정의와 삶의 사투가 벌어지는 그 틈에서 나는 조용히 그러나 누구보다 시끄러게땅굴을 팠다. 나는 지금 땅굴 안에 있다. 땅굴을 가능하게 하는 건 아픈 내 몸이다. 하지만 내가 판 굴은 발각을 눈 앞에 두고 있다. 나는 서서히 옷을 입어야 한다. 신발을 신어야 하고 표정을 만들 준비를 귀를 달고 입을 움직일 준비를 해야 한다. 밖이 궁금하면서도 무섭고 그리우면서도 금방 그 그리움은 체기로 변하고 만다.

알바는 끝났다. 알바를 전전하면서 살겠다고 호언한 삶은 그 기간 여섯 달만에 서글픈 사실을 직감했다. 알바로 산다는 것은 어느 공동체에서나 미래를 그리는데 참여하지 못한채 소모품으로 사용되는 삶을 전전하게 된다는 것이며, 스스로가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한 책임을, 성과를, 상상을 딱 소모품 정도로만, 알바정도로만 유지하며 몸 사리는 법을 익히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알바에겐 열정도, 의욕도 가능하지 않으며 타인에게 환영받지도 않는다. 그래서 두려워졌다. 알바만큼의 삶. 눈치를 보며 내 패를 꺼내보여야 하고, 한 손으론 언제나 짐 가방을 들고 뒷 발의 뒷꿈치는 30도만큼 올린채 요이땅 떠날 준비를 해야 하는삶. 내게 상상도 열정도 의욕도 없어질까 두렵다.


상수역 너머로 보이는 당인리 발전소의 입은 연신 뿌연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바람은 차고 신호는 바뀌었다. 난 그 연기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었으나 사람들의 발걸음을 따라 건너편으로 옮겨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