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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소수자, 주변화된 사람들, 차별받고 있는 사람들,
자기 자신의 뜻을 나름대로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
표현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할 때
쉽게 범할 수 있는 잘못은 다수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다수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우리는 그들을 정보 제공자로만 여기면서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인용하고, 이용하게 됩니다.
그리고 보고서나 논문 같은 것을 쓰고 해석할 권리를 갖습니다.
해석할 높은 권위는 어디까지나 다수자인 중심부가 갖고 있으면서
소수자에게는 "네가 그렇게 느끼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거 이거다."라고 할 수 있는 거지요. p.19



조금 추상적인 얘기가 되겠지만 이것이 식민지 지배의 본질입니다. 식민지 지배의 본질은 차별입니다.
'이 사람이 나와 같은 일을 해도 나의 절반밖에 안 되는 월급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윤리관, 가치관과 같은 것이죠. '이 사람들이 좀 후진적이니까 우리가 도와주고 교육도 시키고 해야 한다.'는 그런 사고방식이죠.
이런 차별이 있어야 지배 국가의 기업들이나 사람들이 이익을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차별이라는 것은 없앨 수 없어요.
그러나 식민지 지배를 하면서 표면상으로는 "차별은 없다. 모두 천황의 적자다."라고 해야지요.
일본은 표면상 그런 얘기를 하면서 제도적으로는 재일 조선인을 차별했습니다.

호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인권은 없어도 된다는 이분법입니다. p.26



일본에 살고 있어도, 이름을 바꿔도, 뭘 해도 호적을 보면 '이 사람은 원래 조선 사람이다.'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죠.

당시 조선 사람들은 외국인처럼 외국 국적을 지닌 채 외국 여권을 가지고 외국인 노동자로 일본에 건너간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일본 사람들이 "너희들은 외국인이니까, 일본이 그렇게 싫으면 나가라!" 하는데,
조선인이 일본으로 갈 때는 여권 같은 것도 필요 없이 일본 국민으로 갔어요.
일본은 조선인을 같은 국민이라고 하면서도 국가의 틀 안에서
위계 제도와 차별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호적을 그런 식으로 정했습니다. p.27



재일 조선인들은 일본 패전 후 일본과 조선을 왔다 갔다 하고 싶어 했지요. 왜냐면 여기에 고향이 있으니까요.
우리 할아버지는 당장 귀국하셨고, 숙부도 귀국했습니다. 그 때는 여권이나 그런 것은 필요 없었죠.
여기 조선에는 국가가 없는 상태니까 그냥 조선으로 간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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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데, 일본은 일단 일본에서 출국하고 나면 그 사람이 다시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일본 국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일본으로 다시 들어오는 것을 막을 법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막았어요. 연합군 GHQ하고 같이 했는데, 그때 일본 정부나 경찰들은 연합군 GHQ에게
"재일 조선인 대다수가 공산주의자나 범죄 집단이다."라는 그런 보고를 되풀이했습니다.
그래서 연합군도 재일 조선인의 입국을 막으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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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것을 막으려고 출입국관리령, 외국인등록력이라는 법을 1947년에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너는 일본 사람이다. 일본 국민이다. 그래도 너를 외국인으로 간주하겠다.'라는 이중 기준이 여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아버지 같은 경우는 "너는 내일부터 외국인으로 간주할 테니까 관청에 가서 신고해라. 신고 안 하면 위법 체류,
불법 체류가 되니까 강제 추방하겠다!"하니까 어쩔 수 없이 신고를 했습니다. p.31



제가 볼 때 이 모든 것은 재일 조선인 문제가 아니라 일본 문제입니다.
일본 문제인데도 재일 조선인 문제라고 하는 것이지요. 일본 사람인데도 일본이라는 국가에 대해서 저항하고 있는 사람에게
"너희는 따지고 보면 원래 조선 사람이 아닌가?"라면서 차별도 하고 억압을 하고 있는데, 이런 심성이나 문화를 전부 다
포함해서 재일 조선인 문제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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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차원을 제대로 아주 신중히 구별해야 한다고 봅니다. '재일 조선인 문제'라고 쉽게 말했을 때
상대방이 그 말을 가지고 어떤 것을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이쪽(재일 조선인의 처지)에서 따지고 확인하고,
지금 말씀 드렸듯이 '지금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일이다.'라는 것을 분명히 밝혀 주어야 합니다.
그런 것이 비록 복잡하고 고약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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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조선인들한테는 일본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것 자체가 차별입니다. p.43



다문화라고 하면 국가하고 엇갈리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는 다문화도 국가의 이익 쪽으로 편성할 수 있다는 것을
얼마든지 알고 있고, 그렇게 해왔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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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국에 외국인들이 많이 들어왔다. 이 사람들에게 한국 말을 가르쳐서 살기 쉽게 해야 한다.'는 것이 반드시
진보적 일인지 따지고 보면 문제가 많이 있을 거에요.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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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듣고 싶으면 오히려 다수자가, 그 얘기를 듣고 싶은 사람들이 고생해서 배워야 한다는 거지요. p.51 


1. 재일조선인은 누구인가/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서경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