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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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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소리가 무섭다. 나무 창문은 미친듯이 흔들리고 있다. 윙윙윙윙.
동생이 빡빡머리가 되어 들어왔다. 내일 아침에 드디어 입대한다. 전주까지 쫓아가고 싶었지만 난 내일 시험이다. 후배가 군대갈 때는 편지도 써서 주었는데 막상 동생이 간다고 하니 무엇을 해주어야 할지 모르겠다. 담백한 남매끼리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어울리지 않는다. 아마 이놈은 집에 전화도 잘 안 할 놈이다. 친구들에게 하면 했지. 오늘 아침 가족 모두 새벽 미사를 드리는데 옛날 생각이 났다. 동생이랑 책 뒤에 가격을 적어놓고 서점놀이 하던 일, 같이 자전거타며(자전거가 한 대였을 때 그렇게 징징거리며 우리는 서로 타겠다고 난리였다.) 집에 오던 일. 그러다 교통사고 날 뻔 해서 서로 엄마한텐 비밀로 하자고 했던 일. 둘이서 참 잘도 다녔는데 어느 순간 우리 둘은 훌쩍 커버려 서로 각자의 삶이 생겨버렸다. 동생은 중-고 때는 날 창피해했고 난 동생을 무서워했던 것 같다. 내 동생은 나에 대해 가장 냉정한 사람이었으며 아마 이놈이 나의 자존감의 80%정도는 뭉게놓았을 거다. 그래도 지도 이제 컸다고 내 걱정을 가끔 해준다. 그 걱정들이 매우 어이없는 거지만. 어느 날 진지하게 너가 남자친구가 생기면 자기가 그 사람한테 엄청 고마워할 거라고, 엄청 잘 해줄거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마초 기질이 다분한 놈. 그래도 난 엄청나게 크게 웃으며 고맙다 했다. 귀여운 것.

아, 이 놈이 군대가면 아마 우리집은 크게 썰렁해질 거다. 뭐 평소에도 집에 잘 안들어오고 저녁에 나가 새벽에 들어오곤 했지만 덕분에 밤이 무섭지 않았었는데. 낮과 밤이 바뀐 내 동생이 낮에는 엄마와 집에 함께 있었고 밤-새벽에는 컴퓨터 앞에 앉아 우리 집 전깃불을 밝혔다. 우리 집 전기세는 이제 덜 나올테지만, 아마 더 쓸쓸해질테다. 엄마와 나의 두려움도 늘어나겠지. 보이스피싱 때도 동생이 옆에 있었기 때문에 별 일이 없을 수 있었고 아빠가 술 취해서 경찰서에서 전화올 때도 동생이 해결할 수 있었는데. 아빠는 인천에서 출 퇴근하느라 매일 밤 늦게 들어오겠지. 요새 우리 집 골목은 매우 이상해져서 이상한 소리가 자주 들리고 초인종을 누르고 사라지는 횟수도 늘어났다. 이제 엄마와 나 둘이 해결해야할 일들이겠지! 왠지 너무 두려워진다. 갑지기 글이 내 두려움에 대한 토로로 바뀌어 버렸네.

군대에서 소지품이 보내져 올 때 그렇게 슬프다던데.. 요놈 다치지만 않고 왔으면 좋겠다. 정신교육 시간에도 평소에 그렇듯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서 제발 세뇌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군대 문화에 쩔어서 어깨에 힘 잔뜩 들어간채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제발 이 누나의 소중함을 알았으면 좋겠다. 흐. 내가 편지 쓰면 답장할거냐 라고 물어도 자기는 인기가 많아서 편지 줄 사람도 많고 연락할 사람도 많다고 말하는 요 싸가지 없는 놈. 이 아이가 제대할 때쯤 나는 어떤 모습일까. 난 되려 그것이 걱정이 된다. 나야 말로 이 사회에 세뇌당하진 않을런지. 어깨에 힘 잔뜩 들어가진 않을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