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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기록

요식업계의 기린아 근황기록


말로만 근황 기록이 아니라 정말 근황기록을 해야지 ! 

1.
꽤 오랜만에 새로운 사람과 어색한 만남을 가지고 있다. 얼굴은 봐왔던 사람인데, 이렇게 마주보고 이야기를 하자니 정말 새로운 사람 같다. 어떻게 친구가 되는 거였더라. 헷갈린다. 같은 활동을 하던 사람도 아니고, 같은 공간에 묶여 있는 것도 아니고. 참 오랜만에 만나는 느낌이다.

항상 막다른 곳에서 내가 자주 하던 상상은  정말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지금까지처럼 말고 내가 생각하는 류지은- 내가 되고 싶은 류지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 동안의 나에게 묶여있지 말고, 다른 이들이 관성적으로 원했던 내 모습이 아니고 내 원하는 대로 내가 꾸미고 싶은 류지은 대로 대하는 것이다. 그러면 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 사람이 되는 것이고 내 눈 앞에 그(그녀)에겐 지금의 내 모습만이 유일할 것이다. 그렇담 난 자유로워지겠지. 좀 더 잘 웃고, 더 잘 울고, 더 솔직하고. 이런 상상만 하면 마음이 몽글몽글 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근데 막상 닥치니 상상은 역시 상상이다. 내 발목에 여전히 류지은은 묶여있고 질질질질 그 흔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딘가가 아쉽고 어딘가가 석연찮다. 상대에게 집중하기 보다는 상대에게 비치는 내 모습에 집착하고 있다. 나의 모습을 상대는 지금 어떻게 보고 있을까 - 난 상대의 시선을 짐작하고 거기에 맞춰 나를 연기한다. 과연 서로를 알 수 있을까. 우리는 왜 타인과 만나는 것일까. 그 시공간에서 무엇을 보고 있늘 걸까. 친구가 된다는 건 어떤 일일까. 이런 생각을 다시 하게 되다니. 꽤 자극이 된다. 

하지만 이 시간들이 꽤 괴로운 건, 나라는 인간은  보기보다 꽤나 세심하고 여려서(?) 상대의 말 하나하나를 기억하는 편인데 그 시작의 관계에서 흔히 등장하는 대화 속의 수많은 약속과 기대가 사실은 그저 모면을 위한 '말'이었을 뿐임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숱한 '말'들의 향연 -  난 또 기대와 실망 포기의 순간들을 지나게 되겠지 - 그럼에도 이어갈 수 있을까. 무엇을 보고 이어갈 수 있을까. 아니 이어가고 싶은 내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2. 
일요일에 카페에서 함께 일하는 ㄴㄹ 언니와 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어쨌거나 난 지금까지 연애는 해본 적이 없고 숱한 짝사랑의 경험이 있을 뿐인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건 일종의 연애였다. 고등학교 이후에는 그 짝사랑의 상대들이 나와 꽤나 친밀감을 나누는 관계 속에 있었는데 이랬을 때 사실은 연애와 그저 친밀한 관계는 어떻게 구분되는 거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이 내게 관심이 있었던 것은 일정정도 확실한 것 같은데 그들과 나의 관계는 진전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진전되지 않던 관계는 우정도 뭣도 아닌채 뜨뜨미지근하니 사라져 버렸다. 그 친밀감이 우정이었다면 지속되지 못할 것도 없었다라고 지금와서는 그렇게 생각한다. (문제적인 건 그들의 공통점은 오래 사귄 애인이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들의 친밀감을 오해한 것인지 아님 그들은 그 뜨뜨미지근한 모종의 호감관계를 견디지 못하고 그들의 애인에게 충실한 것인지 (나와 연락도 끊고!) 참 헷갈리는 지점이지만. 그들 못지 않게 나역시나 헷갈린다. 무언가 확실히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었더라면 난 지금 이런 종류의 억울함과 두려움, 수치심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고 확신한다. 아직까지 시달리지 않아도 괜찮은 거라고 확신한다.

어쨌든 난 말했다. 이제는 누구를 좋아하는 게 무섭다고. 그 불확실하고 진 빠지는 그게 싫다고. 또 내가 그간 깨달은 것이 뭐냐면, 누구를 만나든 일종의 호감을 가지는 시기는 분명히 지나게 되는데, 그리고 그 호감은 사실 내가 짝사랑해왔던 그들에 대한 느낌과 별반 다르지 않는데 그 시기는 결국 지나가고 관계는 안정기에 돌입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난 결국 내가 만나는 모든 이들과 연애할 수 있는 가능성에 놓이게 되고 또 동시에 친구가 될 가능성에도 놓인다. 난 그 모든 시작의 관계에서 떨림과 호기심과 기대를 품고 있다. 연애를 하고자 하는 관계, 친구를 하고자 하는 관계를 구분하는 건 애초에 성립되지 않는다.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는데 어쨌거나 그 호기심과 기대, 떨림, 호감은 모두에게 해당되는 동시에 시간이 지나면 소멸되는 것으로서 대체 그것이 어떤 지점에서 연애로 발전하는 것인지 당췌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언니와의 대화의 요는 그래도 연애를 하자는 것이다. 그래 연애를 하고 싶다.
대체 그 대단한 것이 무엇이길래 잘 살고 있는 나도 외롭게 만드는 것이냐.

3.
나의 찝적댐은 이제 요리에 까지 미쳤다.
사진-도예-수선 및 재봉 에서 이제 요리다. 난 요식업계의 기린아가 될거다. 허풍을 치고 있다. 
수선도 이렇게 허풍을 쳤는데 막상 너무 어렵고 지겹다.
사실 이 찝적댐의 역사는 결국엔 별로 하고 싶은 게 없는, 뭣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는, 그저 폼 잡기에 지나지 않는 나의 군상을 여실히 드러내보여주는 것 같다. 
요새는 이렇게 세상 모든 것에  찝적대다가 불현듯 아, 내 길은 공부였구나, 잠자코 대학원이나 가는 건데. 라고 뒤늦게 깨달으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든다. 이 걱정은 내가 찝적댄 그 어디에도 재능은 없었다는 현실에 기반한다. 그럼에도 난 또 요새 요리에 찝적대고 있다. 스스로 주문을 걸면서. 이건 또 언제까지 가려나. 하지만 너무 쓸쓸한 건, 내가 한 음식이 내가 별로 맛있지 않다는 것이지. 오 하느님.

* 레시피 1. 턱 관절 강화에 도움주는 포카치아 에 대해서 기록하겠다. (9월 10일 토요일)

어쨌거나 일요일엔 갑자기 의욕이 넘쳐서 포카치아를 만들었다. 갑자기 그것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 그랬는데 결과는 흡사 우즈베키스탄 빵과 같은 올리브유를 듬뿍먹은 거대한 누룩빵. 포카치아의 식감은 전혀 없고 매우 질긴데다가 딱딱하다. 무반죽레시피여서 진짜 반죽을 안했는데 그것이 문제였던 걸까. 오븐 온도가 문제였던 걸까. 분명 백밀인데도 빵 속이 누렇다. 내가 아직 이 집의 오븐 특성을 분석하지 못한 걸까. 내가 만든 거 나라도 맛나게 먹어야지 생각하고 잘 안 넘어 가는 걸 꾸역꾸역 잘도 먹었다. 

- 포카치아 레시피 중에 무반죽 레시피를 이용했다.
- 빵에 수분이 너무 없었다. 근데 이건 우리집 오븐의 특징같다. 이 오븐에선 빵이 너무 건조하게 나온다. 이 오븐에서 쓸 때는 레시피보다 좀 더 질게 반죽해야 할까.
- 가스오븐은 밑에서 불이 올라와 밑이 훨씬 빨리 익는다. 아래는 과자고 속은 밀가루다. 이것을 어찌해야 할꼬.
- 레시피 시간으로는 완전히 구워지지 않는다. 가능성은 두가지. 예열이 잘 안 되었거나, 오븐 특성상 레시피 보다 좀 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거나.
- 자고로 반죽을 필 때는  밀대를 이용해야지 암. 
- 파슬리를 너무 많이 넣으니 토마토 소스를 마시는 느낌이다. 향이 별로 좋지 않다. 바질만 많이 넣는 것이 좋을 듯.
- 계량컵과 오븐 온도계가 필요하다. 

다음번엔 폭신한 식감의 하얀 포카치아를 만들고 싶다!!!!

* 레시피 2. 그래놀라 만들기(9월 8일 목요일)

- 역시 레시피보다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 해바라기씨는 넣으면 별로 인 것 같다. 넣어도 조금만. 쓴 맛이 너무 강하다. 
- 오트밀, 호두 분태, 아몬드, 크랜베리(건조과일류), 씨 종류 조금이 좋을 것 같다. 단맛을 좀 더 넣으면 좋을 것 같고 (이번엔 그냥 올리고당으로 했다.) 꿀로 하는 게 훨씬 맛있을 듯. 
- 시나몬 가루를 넣으면 좋을 것 같다. 이번 것은 좀 심심하다. 

하지만 맛있따!!!!! 근데 사실 만드는 것 보다 사는 것이 싼 정말로 의욕없게 만드는 요리다.

* 레시피 3. 토마토 두부 샌드위치(9월 11일 일요일)

분명 체화당에서 맛있게 해먹었던 기억이 있는 토마토 두부 샌드위치!
오랜만에 해볼려니 잘 모르겠다. 왜 모든 재료가 따로 노는 것 같지? 마요네즈 대신 발사믹소스만 발랐다. 빵에, 마요네즈를 쫌 쓰면 식감이 부드러워질까. 
빵에 두부를 두 겹 넣는 것은 에러다. 토마토 2줄이면 몰라도. 
야채는 양상추보다 좀 더 진한 맛의 것을 넣는 것 좋겠다. 이상 끝. 아 포만감은 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