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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기록

'바르게 살자'

*

장진, 정재영
'바르게 살자'

그렇게 웃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건 정말 사람 8명이 죽는 거였고
한 명이 강간당하는 거였으며
나중엔 범인의 자살로 끝나는 파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모든 것이 '모의 훈련'
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목에 건 '사망'이라는 글자와 '실신' '강간'이라는 이름표가 다였기 때문에

그 역설적 상황에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강도였던 '정도만'이 그렇게 자신의 역할에 그 상황에 몰입했던 것과 달리
우리는 그런 '정도만'의 모습에서 역설을 느꼈고 그것은 우리의 웃음을 유발했다

그 은행강도 모의 훈련은 마치 아프간 피랍을 떠올리게 했다.
우리에게 이제는 누구의 생명과 누구의 생존권과 누구의 외침들은
점점 한편의 '극(劇) ' 으로 바뀌어 간다.
 
뉴스에 맨날 나오는  강도, 강간, 살해, 빈곤, 구타
마치 우리에겐 모의 훈련과 같은 거다
우리가 8명의 인질이 죽고 범인이 자살하는 초유의 범죄상황극을 보며 웃었던 것 처럼
(적어도 웃지는 않으나)
그렇게 산다

그래서 영화 시간이 지나갈 수록 난 웃을 수 없었다
너무 재밌고 신선했는데 한편, 마음이 퍽퍽했다
말 그대로 퍽퍽했다


*
그렇다고 이 영화가 무슨 완전 스릴러 이런 거 아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이 사건 자체가 영화 속에서 경찰 훈련을 위해 계획된 모의 훈련이다
이 영화에서 사망은 종이쪽지에 쓰고 자신의 목에 걸고 누워있는 거였고
포박, 실신, 강간 또한 그렇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웃긴다
역시 장진이다
계속 감탄사를 연발할 수 밖에 없다
그의 통통 튐과
정재영의 그 우둔하고 우직한 캐릭터의 만남은

그러나 나의 끝 느낌은 무지 찝찝했고, 멍했다.
그 느낌이 든 순간부터
다시, 길고 긴 내 찌거기들의 배설, 혹은 쌓이고 쌓인 그것들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정말 이 영화 꼭 보길 바란다
8000원이 아깝지 않다
그리고 그 느낌을 나에게 이야기 해주었으면 한다


*
또 난 그리고 그 '극'을 지하철 안에서 다시 마주해야 했다
그리고 또 신촌에서 마주할 것이다
나의 마음을 무겁고, 무겁고, 무겁게
내 마음을 찢고 찢고
하얗게 만드는
그 다수에게는 '극'으로 보이는 현실과 마주할 것이다

내가 너무나 감정이 강한건지, 정말 '오지랖'이 넓은 건지
알 수 없지만
그리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지만
변하지 않는 건 나는 매일 그 '극'을 마주한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