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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갔다.


서강도서관에서 책 2권을 빌렸다.
음식에 관한 책들이다. 요리법보다는 음식에 얽힌 이야기에 관련된 책이다.

난 어릴 때부터 인문사회 책은 좋아하지 않았다. 실용서는 무시했다.
자기계발서는 너무 천박했으며 과학책에는 흥미가 없었다.
인문학 책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내가 책을 싫어하는 줄 알았고 지금도 스스로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책과 TV가 있으면 난 응당 TV 리모콘을 든다. 책과는 하루종일 있지 못하지만 TV와는 하루종일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실용서를 뒤적이고 여행기를 읽고, 장르를 구분할 수 없는 책을 읽다보면 왠지 행복해진다. 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책 냄새를 좋아하고 책 제목을 좋아하고 도서관을 좋아한다. 단지 흔히 책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책을, 그들이 읽는 책을 좋아하지 않을 뿐이다. 그것에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난 사실 공부할 만한 사람이 아닌데 너무 뻔한 모범생의 세계에서 모범생으로 공부를 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세계를 싫어하고 의식적으로 거부하고. 또 그러면서도 그 세계가 아닌 것들을 폄하하고, 무서워하고.
내가 취할 것은 없었다. 언제나 그랬다. 내가 있는 곳은 싫었고 내가 없는 곳은 동경했으나 지금의 나를 구축하기 위해 무시했다. 모르는 곳, 모르는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그렇게 만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결국 나는 자유롭지 못했다(못하다). 그랬던 것 같다. 항상 갈곳이 없다고 느꼈다. 지금도 그렇다.

난 내가 경험하는 것보다 남의 경험을 훔치는 것을 좋아한다. 여행을 가기 위해 여행정보를 모으는 것보다 남의 여행기를 훔쳐보는게 좋다. 요리할 레시피를 찾는 것 보다 요리에 얽힌 이야기, 그 비주얼, 그걸 만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훔쳐보는 게 더 좋다. 공부도, 운동도, 옷도, 그림도 다 그랬다.
이렇게 지금만큼의 시간이 지나자 난 자신이 없다. 난 그 무엇도 스스로는 할 수 없는 사람이지 않을까. 그저 남들이 한 모습을 훔쳐보며 꽁무니를 따라가게 되는 삶이지 않을까. 내 것이 없는 사람이지 않을까. 

옆에 있는 이들을 볼 때마다 이런 나에 대한 자괴감에 견딜 수가 없다. 
물론 그럴 땐 빨리 다시 남의 경험을 섭취하면 소화는 안 될지언정 그 자괴감에서 빠져나올 수는 있다. 그 숱한 요리 맛집 파워블로그들이 알바몬이 도서관 여행기 서가가 나에겐 그런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