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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기록

감동을 적지 않으면 안 되겠다.



포푸라 안녕

: 작년 겨울에 교토에 갔을 때의 이야기다. 서먹서먹한 채로 게스트 하우스의 일본 젊은이들과 라이브클럽에 가는데 한 젊은이가 나에게 물었었다. 일본어를 어떻게 배웠냐고. 배운 수준의 일어가 아니라는 것은 그들도 알 터인데...외국인인 나와 말이 통하니 신기했나보다. 영화를 보고. 라고 짧게 대답했다. 무슨 영화를 좋아하니. 물었다. 카모메 식당을 좋아한다. 답했다. 아, 나도 좋아한다. 안경도 좋다. 답했다. 그렇게 짧디짧은 대화가 이어지다 젊은이가 영화를 소개해주었다. 마쟈오-타? 마쟈보-타? 가뜩이나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에다가 난생 처음 듣는 일본어 발음이라 대체 저 젊은이들이 무슨 말을 하는겐가 싶었다. 몇 번을 되물어 마쟈보오타? 라고 따라 발음했더니 그게 맞다고 했다. 그 대화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일본에서 나눈 3분 이상의 대화였다. 그리곤 괜시리 그 영화가 보고 싶었다. 꼭. 어떻게 해서라도 꼭. 근데 이건 뭐 발음도 확실히 모르지, 무슨 뜻인지도 모르지. 카모메식당 스태프가 만든 영화라는 것과 교토를 배경으로 한 영화라는 것. 그게 내가 가진 정보의 끝이었다. 

: 그러다가, 얼마 전 그러니까 어언 일 년이 지난 후에야 그 때의 마쟈보오타는 마쟈오와아타(-_-) 라는 것을 알았고 그건 motherwater를 일본어식으로 읽은 발음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마더가 마쟈가 되다니. 이건 뭐. 참으로.... 어찌되었건 그 거시기가 이 거시기라는 것을 알게된 순간의 환희! 이 영화는 나의 운명의 영화다. 많은 사람들이여, 나는 이 영화를 무려 1년 전에 교토현지인에게서 추천받았어요!! 라고 외치고 싶은 유치한 심정. 누구를 붙잡고라도 자랑을 하고픈 콩닥하는 마음.

: 왠지 쓸데없는 고집으로, 게으름으로 그 영화의 정체를 알고난 후로도 그것을 보고자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다. 언젠가 다시 운명처럼 그것이 다가오리이다. 근거없는 신뢰.
생일즈음이 되어 선물로 무엇을 받고 싶니? 라는 물음을 받을 때 마다 이 영화를 이야기하곤 했다. 정말 누구라도 이 영화를 나에게 선물해줬으면 하는 간절함 반. 그냥 상대에게 부담을 안 주는 선물을 답하고 싶은 마음으로 흘려 얘기하는 마음 반.  

: 1월 4일. 그 날이 대망의 날이었던 게다.
난 무려 빔을 이용해 넉넉한 화면으로 이 영화를 보았다. 맛난 밥까지 먹으면서! 으하하하하하.
이벤트가 준비되었다길래 가죽피리가 노래를 부르며 그들의 사랑을 과시하나 싶었는데 갑자기 빔이 설치되더니, 전지가 붙여지더니, 영화가 틀어지더니!!! 뭔가 발끝에서부터 오는 촉. 이건 내 운명의 영화다! 알렐루야. ㅎㅈ과 ㅁㅎ를 보며 이거 마더워터야? 물었던 순간! 흑흑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오 가죽피리 여러분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내가 보고 싶단 것을 기억해준 이 가죽피리분들의 센스가 어찌나 감사한지. 내 생애 최고의 리액션이 나올 수 밖에.
서프라이즈 파티도 유별난 촉으로 인해 결국엔 서프라이즈가 되지 않는 본인의 인생에서 이 가죽피리의 이벤트는 길이길이 기억 될 최고의 이벤트! 라....
보고있나, 가죽피리. 

: 영화의 내용은. 적을 힘이 없다.
그럼에도 확실한 건 난 앞으로 평생 이 영화의 시작을 마주할 때마다 말할 수 없는 벅참이 있을 거라는 것.그리곤 시작과 함께 분명 그 얼굴들을 떠올리게 될 거라는 것.

: 어찌 되었건 요새 일상생활에서 계속 play 시켜놓는 영화라는 것.